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밀라 주택, 카사 바트요, 구엘 저택,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을 설계했다.
19세기말 카탈루냐 지역에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대단한 변화가 있었다.
가우디는 당시 카탈루냐 건축을 주도했던 고전주의 건축을 벗어나, 건조한 기하학 만이 강조된 건축이 아닌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의 사물들을 관찰했고,
그런 형태들의 가능성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그의 건축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들 외에도 곡선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내부 장식과 색, 빛이 조화를 이룬 건물들을 건축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영국 건축가로, 렌초 피아노와 함께 설계한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로 이름을 알렸으며, 런던 로이드 빌딩, 밀레니엄 돔 등을 설계했다.
건물의 내부 구조와 설비를 과감히 외부로 노출시키는 하이테크 건축(High-Tech Architecture)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2007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여의도의 파크원(Parc.1)을 설계했는데, 그가 설계한 단일 프로젝트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지상 69층과 53층 오피스 타워 2개 동을 비롯해 백화점, 호텔 등으로 구성되며, 붉은색으로 칠한 철골 트러스가 외관의 시그니처를 이룬다.
파크원 안에 자리한 백화점 더현대 서울 역시 그의 작품으로, 방패연에서 모티브를 딴 채광 천창과 내부 기둥 없는 개방된 실내 공간이 특징이다. 밀폐적이던 기존 백화점과 달리 자연광이 들어오는 대형 실내 정원을 조성해 '도심 속 정원'이라는 평을 받는다.
홍콩 출신의 건축가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도시공학을, 하버드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1994년 렘 콜하스와 함께 홍콩에 OMA 아시아를 설립했으며, 2001년 독립하여 설계회사 RAD(Research Architecture Design)를 세워 대표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을지로의 SK텔레콤 본사 사옥을 설계했다. 마치 고개를 숙인 듯, 몸을 구부린 듯한 독특한 곡면 외관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밖에도 서울 광진구의 W서울 워커힐과 그랜드 워커힐 서울, 전주대학교 스타센터(중앙도서관) 등을 설계했다.
이타미 준(성: 이타미, 이름: 준)의 철학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 없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재일교포 건축가인 이타미 준은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일대에 여러 대표작을 남겼다. 포도호텔(2001)은 제주의 오름과 초가지붕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수·풍·석 박물관(2006)은 제주의 물·바람·돌을 테마로 한 세 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애 마지막 유작인 방주교회(2009)는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형상으로 설계되어, 2010년 한국건축가협회 건축물 대상을 받았다.
스위스 바젤 출신의 건축가로, 목수 수습 경험을 바탕으로 재료의 물성과 빛, 공간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위스 소도시 할덴슈타인의 작은 사무소에서 소수의 프로젝트만 맡아 진행하여 '은둔의 건축가'로도 불린다.
테르메 발스, 브루더 클라우스 채플, 콜룸바 미술관 등을 설계했으며,
2009년 프리츠커상과 2013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로열 골드 메달을 수상했다.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이름: 산티아고, 성: 칼라트라바)는 스페인 발렌시아 출생으로, 발렌시아 폴리텍대학교에서 건축학 학위를 받고 졸업한 후
스위스의 명문 대학교인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ürich)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였다.
이후 그는 스페이스-프레임 구조의 건축미를 발견하고, 이를 연구함으로써 건축의 세계로 입문하게 되었다.
모더니즘(Less is More ↔ Less is Bore)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로, 현대 건축의 기초를 다졌다고 평가되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또한 2차 세계 대전 직후 부족한 주거를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철근과 콘크리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현대 집합주거의 한 형태인 아파트를 고안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일본 요코하마 출신의 건축가로, 나무·돌·종이 등 자연 소재와 지역성을 살린 '약한 건축'(2004) 철학으로 유명하다.
도쿄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2020 도쿄올림픽의 주경기장인 일본 국립경기장을 설계했다.
2024년 서울 서초구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오디오 전문 박물관 오디움(Audeum)이 그가 국내에 처음 선보인 건축물이다. 2만여 개의 알루미늄 파이프가 건물을 수직으로 감싸 숲속에 비치는 햇살을 표현했으며, 디자이너 하라 켄야가 공간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함께 만들었다.
미국 코네티컷 출신의 건축가로, 1972년 건축설계사무소 모포시스(Morphosis)와 건축학교 SCI-Arc(남캘리포니아 건축대학원)를 공동 설립했다.
각진 형태와 겹겹의 외피, 대담한 구조로 유명하며 2005년 프리츠커상, 2013년 미국건축가협회(AIA) 골드 메달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서울 이화여대 인근의 썬타워를 설계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서울의 코오롱 One&Only타워, 세종시 방축천 일대의 게이트웨이 프로젝트인 세종 엠브릿지 등 국내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투쿠만 출신의 건축가로, 1952년 미국으로 이주해 에로 사리넨의 건축사무소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굴곡진 외벽과 금속·유리 소재를 즐겨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예일 대학교 건축대학 학장을 지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1998년 완공 당시 세계 최고층 건물), 뉴욕 세계금융센터 등을 설계했고,
1995년 미국건축가협회(AIA) 골드 메달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광화문의 교보생명빌딩을 설계했다.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가 펠리가 설계한 도쿄 주재 미국 대사관 건물에 매료되어, 1980년 그에게 직접 사옥 설계를 의뢰하면서 지어졌다.
자하 하디드(이름: 자하, 성: 하디드)는 마치 외계인의 우주선을 보는 것 같은,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비정형 건축물이 특기이다. 그 때문에 그녀의 건축물에선 직선보다 곡선 디자인을 즐겨 쓰며, 여러 건물이 유기적으로 합쳐진 스타일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동대문 DDP만 봐도 그녀의 대표적인 건축 스타일을 알 수가 있다. 재료는 겉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콘크리트, 철강이 외관에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을 특징적으로 쓰고 있다. 현대 건축물의 상징적인 요소인 커튼월 방식의 건물을 탈피하는 측면에서 건축계의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DDP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라는 건축의 특성과 주변 경관과의 조화성 등을 무시하고 외형의 디자인에만 신경쓴다는 비판도 있다.
스위스 바젤 출신의 동갑내기(1950년생)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1978년 공동 설립한 건축설계사무소로,
영국 테이트 모던,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새둥지'),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등을 설계했다.
2001년 프리츠커상, 2007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로열 골드 메달을 수상했다.
2021년 서울 도산대로에 완공된 송은문화재단(SONGEUN) 신사옥이 이들의 국내 첫 작품이다.
2024년에는 상업 건축물로는 국내 최초로 더현대 광주를, 2025년에는 더현대 부산을 설계했다.
2023년 서울 서초구 서리풀공원에 들어설 개방형 수장고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의 국제설계공모에도 당선되어, 2028년 개관을 목표로 설계를 맡고 있다.
1989년 어느 겨울, 귀도 반 로섬(이름: 귀도, 성: 반 로섬)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국립수학정보과학연구소(CWI Amsterdam)에서 일하던 시기였다.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특별히 시간이 많이 남았던 귀도는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ABC로부터 영감을 얻어 새로운 언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새 언어가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으면서도 강력한 도구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이름을 고민하던 중, 영국의 유명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썬의 플라잉 서커스'에서 영감을 받아
'파이썬(Python)'으로 정했다.
재미있고 유쾌한 코미디처럼, 파이썬도 즐겁고 유용한 도구가 되길 바란 그의 마음이 반영된 이름이었다.
존 매카시(이름: 존, 성: 매카시)는 "인공지능(AI)의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수학자이다. 주요 업적으로는
1) 1956년 인공지능(AI) 용어 창시, 2) 1958 LISP 언어 개발, 3) 현대 클라우드 컴퓨팅의 뿌리로 평가되는 타임셰어링 개념 제안, 4)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AI 연구 분야를 규정하였다.
워렌 맥컬록(이름: 워렌, 성: 맥컬록)은 1943년, 맥컬럭과 피츠는 역사에 남을 논문을 발표한다.
"A Logical Calculus of Ideas Immanent in Nervous Activity"
그들은 이 유명한 논문에서 우리 뇌에 있는 뉴런을 간단한 모델로 변환하였으며,
이 모델은 '논리 단위'로 구성되어 모든 계산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논문은 인간의 뇌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신경학과 촉발 발전한 컴퓨터 과학을 연결한 연구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의가 있다.
남아공에서 태어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했으며, 미국·캐나다·남아공 삼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테슬라, 스페이스X, 스타링크, 뉴럴링크, xAI 홀딩스 등 다수의 첨단 기업을 보유 및 운영하면서 2020년대 들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인 반열에 등극했다. 실용 중심적인 경영, 이를 아우르는 미래 지향적 비전 등이 그의 특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요슈아 벤지오(이름: 요슈아, 성: 벤지오)는 2007년 "Greedy layer-wise training of deep networks"라는 논문을 통해 오토인코더(Autoencoder)를 사용한 좀 더 간단한 사전훈련 방법을 제안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을 통해 비로소 깊은 신경망에서도 학습이 가능하게 되었다.
1974년, 폴 워보스(이름: 폴, 성: 워보스)가 박사과정 논문에서 다층 구조의 가중치와 편항을 학습시키기 위한 역전파(Backpropagation)를 제안하였다. 기존의 전방향(Feedforward) 학습을 통해 가중치와 편향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방향에 대한 학습 결과를 보고, 뒤로 가면서 가중치와 편향을 수정하는 알고리즘이다.
즉, 신경망의 오차(예측값 - 실제값)를 출력층에서부터 입력층으로 피드백하여 각층(Layer)의 가중치와 편향을 업데이트 하는 알고리즘이다.
현대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수학자, 논리학자, 암호학자이다. 주요 업적으로
1) 튜링 기계(Turing Machine), 2) 제2차 세계대전 암호 해독, 3)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들 수 있다.
튜링은 동성애자였는데,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로 취급되어, 1952년 ‘외설 행위’로 기소되어 강제적인 화학적 거세를 당했으며, 1954년 자살로 사망했다.
2009년, 영국 정부가 공식 사과했고, 2013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면을 내렸다. 현재 영국의 50파운드 지폐에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으며,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상징적 인물로 기려진다.
1943년, 월터 피츠(이름: 월터, 성: 피츠)는 맥컬럭과 역사에 남을 논문을 발표한다.
"A Logical Calculus of Ideas Immanent in Nervous Activity"
그들은 이 유명한 논문에서 우리 뇌에 있는 뉴런을 간단한 모델로 변환하였으며,
이 모델은 '논리 단위'로 구성되어 모든 계산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논문은 인간의 뇌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신경학과 촉발 발전한 컴퓨터 과학을 연결한 연구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의가 있다.
2006년
제프리 힌턴(이름: 제프리, 성: 힌턴)은
"A fast learning algorithm for deep belief nets"라는 논문을 통해 가중치의 초기값을 제대로 설정하면 깊이가 깊은 신경망도 학습이 가능하다는 연구를 선보였다. 즉, 신경망을 학습시키기 전에 계층(예: 입력층, 은닉층) 단위의 학습을 거쳐 더 나은 초기값을 얻는 방식의 사전훈련(Pre-training) 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금석학자, 실학자, 화가로, 독창적인 서체인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했으며,
'추사(秋史)'라는 호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경주 김씨 출신으로, 금석문 연구와 고증학에 큰 업적을 남겼고, '세한도 [YouTube]'와 같은 명작을 남긴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수학의 왕자(Prince of Mathematicians)" 라고 불릴 정도로, 수학, 물리학, 천문학, 전기학 등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기여를 한 천재 과학자이다.
1777년에 독일의 브룬스비크에서 아주 가난하고 교육열이 없는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아버지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였고 아버지는 그가 벽돌공이나 정원사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머니와 삼촌의 격려와 도움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였다.
새로운 관측 도구인 망원경을 이용해 갈릴레이 위성을 비롯한 주요 초기 관측 천문학적 발견들을 이루고
이들을 근거삼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였으며,
실험과 수학을 결합한 근대적인 과학적 방법으로 물체의 운동을 연구하여 근대 역학의 탄생에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
16-17세기 과학혁명의 핵심 인물 중 1명으로 평가된다.
전통적으로 관측 천문학의 아버지,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근대 과학의 아버지 등으로 불려왔으며,
그 호칭의 무게만큼이나 갈릴레이는 언제나 과학사학자들의 주목, 재평가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전형적인 르네상스형 인간으로서 그의 업적은 천문학, 역학, 과학 철학, 공학, 수학에 널리 걸쳐 있다.
[Shorts]
중력가속도: 400년만에 증명된 갈릴레오의 '미친' 실험
근대 철학의 포문을 연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진리라 확신하고는, 이를 모든 학문의 제1 원리로 정립하였다.
서양이 중세를 벗어나게 된 그 결정적인 동력을 데카르트가 제공하였기에 그를 두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데카르트가 '좌표계'를 만들었다. 정확히는 직교 좌표계를 도입했으며,
이것으로 인해 수학 특히 그리스 시대에서 머물고 있었던 기하학은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직교 좌표계를 두고 'Cartesian coordinate (데카르트 좌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후 뉴턴이나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좌표계에 기초한 대수적 함수의 개념이 데카르트에 의해 이미 도입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은 데카르트는 처음으로 방정식에 미지수 X를 사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1987년 피에르 코스타벨은 '데카르트의 비밀 노트'에, 위상 수학에 해당하는 오일러 공식이 이미 증명되어 있음을 밝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름: 레오나르도, 출신 지역: 다 빈치)는 화가,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과학자, 음악가, 작가, 해부학자, 지질학자, 식물학자, 지리학자, 요리사, 수학자 등
다방면에서 완벽에 가깝게 두루 활약한 자타공인 다중천재(Polymath)이며,
키, 외모, 목소리 등 외적 용모 또한 뛰어났다.
또한 운동을 즐겨 강인한 완력과 쉽게 지치지 않는 근골격계를 가졌으며,
검술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다재다능함과 창의성으로 "르네상스 인간(Renaissance Man)"이라
불릴 만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양대 거장으로,
서로 다른 매력과 특징을 가진 천재들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다빈치와 23세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에 활동하며 라이벌 의식 존재했으며,
1504년 피렌체에서 (베키오 궁전 벽화) 두 작품(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이 동시에 의뢰되었다.
서로의 작품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경쟁 관계였다.
네덜란드 흐로닝언에서 태어난 스위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유체역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유명한 베르누이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요한 베르누이와 삼촌 야코프 베르누이 역시 수학계의 거장이었다.
베르누이 방정식 (Bernoulli’s Equation)
1738년 저서 Hydrodynamica에서 발표. 유체의 속도, 압력, 위치 에너지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 것으로, 오늘날 항공기 날개의 양력[Figure] 설명이나 벤추리 효과[Figure]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 P + ρgh + \frac{1}{2} ρ v^2 = \text{const.} $$
기체 분자 운동론
기체의 압력과 온도를 분자 운동으로 설명하는 초기 이론을 제시했다.
확률과 경제학 연구
기대효용 이론을 제안하여 경제학과 의사결정 이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봄은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종류의 실체가 어떤 식으로든 상호작용한다”는 데카르트의 실재 모델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양자물리의 견해를 발전시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는 “암묵적 질서(implicate order)”와 “명시적 질서(explicate order)”의 수학적·물리적 이론을 전개했다.
우리가 살고 잇는 이 세상, 이 단단한 물질은
겉으로 펼쳐진 질서인데, 이건 표면적 질서일 뿐이다.
이 드러난 표면 밑 깊은 곳에는 숨겨진 질서가 있다.
[Figure]
"나에게 지렛대와 받침점을 주면 지구도 들어올릴 수 있다"는 지렛대의 수학적 원리를 정립하였다.
'유레카(Eureka)'는 그리스어로 "찾았다!"라는 뜻의 감탄사로, 아르키메데스가 목욕 중 부력의 원리인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발견하고 소리친 말로 유명하다.
마르켈루스의 '아르키메데스를 살려서 데려오라'는 명령을 전달받은 한 로마 병사가 그가 이름을 밝히라는 명령에 응하지 않고 "그 원을 밟지 말라!"고 말한 것에 격분하여, 그가 아르키메데스라는 것도 모른 채 그만 죽이고 말았다.
특수 상대성 이론 (Special Relativity Theory):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빠른 속도에서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설명한다.
[Shorts] 차 안과 밖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Shorts] 빛의 속도록 날아가면 250광년 거리까지 몇 초 걸릴까?
[YouTube] 빛의 속력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 E = m c^2 \]
일반 상대성 이론 (General Relativity Theory): "중력은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휘어짐"이라는 혁신적 관점으로, 블랙홀·우주 팽창·중력 렌즈 같은 현상을 설명한다.
[Shorts] 아인슈타인이 말한 핵심
광전 효과 (Photoelectric Effect) 법칙: 빛이 연속적인 파동이 아니라 광자(photon)라는 불연속적인 에너지 덩어리(입자)이다.
"수학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현대 수학의 언어와 표기법, 기본 개념을 정립한 인물이다.
그의 연구는 오늘날 수학, 물리학, 공학, 컴퓨터 과학까지 이어지고 있다.
▪ 스위스 바젤에서 출생.
▪ 바젤 대학교에서 요한 베르누이(Johann Bernoulli)의 지도를 받으며 수학에 깊이 몰두.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아카데미와 프로이센 베를린 아카데미에서 활동.
▪ 시력을 점차 잃어 말년에는 거의 실명 상태였지만, 엄청난 양의 논문과 저서를 구술하여 연구를 이어갔음.
▪ 오일러 항등식(Euler's Identity):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
이 공식을 보고 감동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는 수학자의 영혼이 없는 것이다. - 오일러
\[
e^{iπ} + 1 = 0
\]
이 공식이 아름답다고 불리는 이유는 수학에서 중요한 5가지 상수(\(e,i,\pi ,1,0\))와 3가지 기본 연산(덧셈, 곱셈, 거듭제곱)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일렁 공식(Euler's formula)
[Note]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 (인식론) 칸트는 자신의 철학적 혁명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천문학에서 이룬 혁명에 비유했다.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식론)
주요 저서: 순수이성비판(Critique of Pure Reason)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하여, 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와 선험적(a priori) 지식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현상(phenomena)이며, 대상 그 자체인 물자체(noumenon)는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2)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윤리학)
주요 저서: 실천이성비판(Critique of Practical Reason), 윤리형이상학 정초
의무론적 윤리학을 정립하며, 행위의 결과가 아닌 동기와 의무에 따라 도덕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은 그의 윤리학의 핵심 원칙으로,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와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하라"가 유명하다.
수학자(확률이론의 창시자; 이항정리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파스칼의 삼각형),
물리학자(압력은 밀폐된 유체 내에서 모든 방향으로 같은 크기로 전달됨; 공기에도 무게가 있다를 증명),
발명가(최초의 기계식 계산기 발명),
철학자(유고집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유명한 명언),
신학자로, 짧은 생애 동안 수많은 분야에서 혁신적인 업적을 남긴 천재적 인물입니다.
과학과 철학, 신앙 사이를 넘나들며 르네상스 이후의 유럽 사상과 과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Shorts] 블레즈 파스칼 통합 몰아보기 |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Shorts] 파스칼의 원리ㅣ재밌는 유공압 이야기
[YouTube]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힘! 굴착기 힘
생애
.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9살에 고아가 됨
. 수도원 학교에서 교육받으며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임
. 프랑스 혁명 시기에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되기도 함
.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동행(1798-1801)
. 이후 그르노블의 지사로 임명되어 행정가로도 활동
푸리에의 발견은 단순한 수학 기법 그 이상으로 현대에 영향을 미쳤다.
. 분석의 관점 전환(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성분으로 분해하여 이해)
. 학문 간 융합(수학, 물리학, 공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구 제공)
. 디지털 혁명의 기초(현대 디지털 신호처리의 수학적 토대)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이 수라고 주장했다.
무리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증명한 것은 고대 그리스 피타고라스 학파로 전해진다.
히파소스는 이등변 직각삼각형의 밑변과 빗변의 비는 정수의 비율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우주가 완벽하여 모든 것이 정수의 비로 표현될 수 있다고 믿었던 피타고라스 학파에 충격을 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 학파의 동료들이 '우주의 섭리에 거스르는 요소를 만들어낸' 히파소스를 살해했다고 하며,
죽이진 않고 추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물리학(Hooke's Law), 생물학(최초로 세포(cell)라는 용어를 사용), 건축(천문대, 병원 등 설계),
기계공학(스프링 시계 개발 등), 천문학(목성 대적점 관측 등) 등 거의 모든 과학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과 발명을 이루어낸
천재적으로 다재다능한 르네상스형 인물이었다.
▪ 중력 법칙의 우선권을 둘러싸고 뉴턴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후세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는 측면이 있다.
▪ 훅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자연 현상을 이해하려 했던 근대 실험과학의 진정한 개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빈센트 반 고흐는 19세기 네덜란드의 후기인상주의 화가로,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지만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격렬한 붓터치와 강렬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켰으며,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사후에 큰 명성을 얻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등이 있다.
프랑스의 화가로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nisme)의 창시자이자 대표 화가이다.
대상을 명확한 윤곽으로 그리던 전통 화법을 벗어나,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색채가 만들어내는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작품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의 제목에서 '인상주의'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같은 대상을 시간과 계절에 따라 반복해 그린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 "수련" 등의 연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말년에는 지베르니의 자택 정원에서 수련 연작에 몰두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스페인 출신의 거장으로, 입체주의의 창시자이다.
화가, 조각가, 도예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와 같은 대표작을 남겼다.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고,
80년 이상 활발한 예술 활동을 통해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라파엘로(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거장)처럼 그리기까지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극작가로 실존주의(Existentialism)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독일 유학 중 후설의 현상학을 접한 뒤,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중심에 둔 자신만의 철학 체계를 세워나갔다.
저서 『존재와 무』, 『구토』 등을 통해 인간 실존의 문제를 파고들었으며,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작가는 스스로를 제도화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며 수상을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핵심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
가위나 칼 같은 도구는 '무언가를 자르기 위한 것'이라는 본질(용도, 목적)이 먼저 정해진 뒤에 존재(제작)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신이 정해둔 인간의 본질(사명, 목적) 같은 것은 없이,
인간은 먼저 세상에 내던져진 채로 존재하고, 그 후에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인간에게는 미리 주어진 정해진 본성이 없으며,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절대적 자유는 동시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의미하기에,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condamné à être libre)"고 표현하기도 했다.
82세 추운 겨울밤, 부와 명예를 버리고, 불편한 삶의 진리(진실)를 찾기 위해, 외투 하나에 성경 한 권만을 들고 떠나 일주일 만에 죽은 남자!
러시아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사상가이다. 그는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톨스토이는 문학뿐 아니라 철학과 사회 개혁에도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평생 탐구한 사상가였다. 대표 작품으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Shorts]"이 있다.
헤르만 헤세(이름: 헤르만, 성: 헤세)는 책에서 말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데미안: 에밀 싱클레어의 청년 시절 이야기'에서
[Shorts] 데미안 | 1분 명작 고전
코린토스를 세운 왕으로, 꾀가 많아 신들마저 두 번이나 속인 인물이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결박해 가두어버려 한동안 인간 세상에서 아무도 죽지 않게 만들었고,
저승에 끌려가서도 아내에게 자신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 일러둔 뒤
"장례도 못 받았으니 이승에 나가 아내를 꾸짖고 오겠다"며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여 다시 이승으로 돌아왔다.
두 번이나 죽음을 기만한 죄로, 그는 저승에서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바위는 정상에 닿는 순간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그는 영원히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이 형벌을 부조리한 인간 실존(existence)에 대한 은유로 해석했다.
끝나지 않는 노동, 성취되지 않는 목표 앞에서도 시지프스는 굴러떨어진 바위를 향해
다시 산을 내려가는 그 순간에 스스로의 운명을 자각하고 받아들인다.
카뮈는 이 부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살아가는 태도 자체가 인간의 존엄이라 보았고,
에세이는 다음의 문장으로 끝맺는다.
"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붓다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의 칭호이며, 본명은 싯다르타 고타마(Siddhartha Gautama)로 전해진다.
고대 인도 샤카족 출신의 수행자로서 인간이 겪는 늙음·질병·죽음과 괴로움의 원인을 탐구했고,
깨달음을 얻은 뒤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연기(緣起), 무상(無常), 무아(無我)를 가르쳤다.
정확한 생몰 연대는 확정되지 않았으며, 전통적으로 80세에 열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대는 도대체 무엇을 구하려고 이렇게 눈 속에 서 있는가?"
"법의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달마 대사는 위엄 있는 큰소리로 외쳤다.
"정도(正道)를 얻고자 한다면 좌방(左旁)을 버려야만 하느니라. 홍설(紅雪)이 허리에 차면 그 때 가서 전수하리라."
신광은 달마의 이 한 마디가 청천벽력처럼 들렸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비장한 각오로 예리한 계도(戒刀)를 뽑아 들고 눈 깜짝할 사이에 자기의 좌방(左膀), 곧 왼쪽 팔뚝을 잘라버렸다. 이것은 달마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착각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달마가 이야기한 ‘좌방(左旁)’은 사도(邪道)를 말함인데, 신광은 좌방(左膀, 왼쪽 팔뚝)이라 생각했다.
신광의 왼쪽 어깨에선 선혈(鮮血)이 뿜어 내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주변에 쌓인 눈은 모두 붉게 물들어 홍설(紅雪)이 됐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혜가단비(慧可斷臂)’ 일화이다.
귀곡(鬼谷, '귀신이 사는 계곡')이라는 곳에 은거하며 제자를 길렀다고 하여 귀곡자, 귀곡선생이라 불린 인물로,
병법과 종횡술(외교술)에 능한 전국시대의 사상가이다.
아무나 제자로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그의 문하에서 나온 극소수의 제자들은 훗날 전국시대를 뒤흔든 인물들이 되었다.
손빈(孫臏):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의 후손. 동문인 방연의 모함으로 다리를 잃는 형벌을 당했으나, 훗날 제(齊)나라의 군사(軍師)가 되어 방연이 이끄는 위(魏)나라 군을 격파했다.
방연(龐涓): 위나라의 대장군이 되었으나, 스승 몰래 손자병법을 훔쳐보다 파문당했다. 훗날 손빈과의 전투에서 패해 목숨을 잃는다.
소진(蘇秦): 여러 나라가 동맹하여 강대국 진(秦)에 맞서야 한다는 합종책(合從策)을 주장한 유세가로, 한때 6개국의 재상을 겸했다.
장의(張儀): 소진과 반대로 각국이 개별적으로 진나라와 손잡아야 한다는 연횡책(連橫策)을 주장한 유세가로, 소진의 합종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다.
이들 네 제자는 크게 병법가(손빈·방연)와 유세가(소진·장의) 두 계열로 나뉘며, 이후 중국 역사에서 병법과 외교술의 대명사로 회자된다.